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
Written speech delivered by President Barack Obama when accepting the Nobel Peace Prize in Oslo on Thursday.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This written text of President Barack Obama's Nobel Peace Prize acceptance speech was provided by the White House prior to its delivery by the President. The speech as delivered in Oslo, Norway Thursday morning may differ slightly from what is below.

 
 
Your Majesties, Your Royal Highnesses, Distinguished Members of the Norwegian Nobel Committee, citizens of America, and citizens of the world: I receive this honor with deep gratitude and great humility. It is an award that speaks to our highest aspirations ? that for all the cruelty and hardship of our world, we are not mere prisoners of fate. Our actions matter, and can bend history in the direction of justice.
노르웨이 왕실내하, 귀족 여러분, 존경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여러분, 미국의 시민들, 그리고 전세계의 시민여러분: 저는 이 영광을 얻게 된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며 매우 황송할 따름입니다. 이 상은 세계의 모든 폭력과 고난에 맞서서, 인류가 단순히 운명의 노예가 아니라는 인류의 원대한 열망를 상징합니다. 우리들의 행동은 중요하며, 역사를 정의로운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And yet I would be remiss if I did not acknowledge the considerable controversy that your generous decision has generated. In part, this is because I am at the beginning, and not the end, of my labors on the world stage. Compared to some of the giants of history who have received this prize ? Schweitzer and King; Marshall and Mandela ? my accomplishments are slight. And then there are the men and women around the world who have been jailed and beaten in the pursuit of justice; those who toil in humanitarian organizations to relieve suffering; the unrecognized millions whose quiet acts of courage and compassion inspire even the most hardened of cynics. I cannot argue with those who find these men and women ? some known, some obscure to all but those they help ? to be far more deserving of this honor than I.
여러분의 관대한 결정이 가져온 상당한 논란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저는 나태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국제무대를 향한 저의 직무가 (마무리하는 단계가 아니라) 아직 시작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역사의 거인들 -알베르트 슈바이쳐, 마틴 L. 킹; 조지 마셜, 넬슨 만델라--과 비교해 볼때 저의 성취들은 보잘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도처에는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여 투옥과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인류의 고난을 막기 위해 인권기관에서 노고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과; 또한 매우 강한 냉소적 시선 속에서도 용기와 연민을 이끌어내는 행동를 추구하는 알려지지 못한 수백만의 시민들이 있습니다. 저는 저보다 이러한 영광을 받아 마땅한 후보들-일부는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또 일부는 그들이 돕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가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낸다면 저는 그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But perhaps the most profound issue surrounding my receipt of this prize is the fact that I am the Commander-in-Chief of a nation in the midst of two wars. One of these wars is winding down. The other is a conflict that America did not seek; one in which we are joined by 43 other countries ? including Norway ? in an effort to defend ourselves and all nations from further attacks.
하지만 아마도 저의 수상을 둘러싼 논쟁들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제기된 문제는 제가 두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의 최고 군통수권자라는 사실입니다. 그 중에 한 전쟁은 이제 마무리되어가는 상태입니다. 또 다른 전쟁은 미국이 전혀 일으킨 분쟁이 아닌; 노르웨이를 포함한 43개국이 모여 우리자신을 보호하고 모든 국가들을 태러로부터 지키기 위한 전쟁입니다.    
 
Still, we are at war, and I am responsible for the deployment of thousands of young Americans to battle in a distant land. Some will kill. Some will be killed. And so I come here with an acute sense of the cost of armed conflict ? filled with difficult question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war and peace, and our effort to replace one with the other.
여전히, 우리는 전쟁중이며, 저는 먼 이국의 전쟁터에 수천명의 미국 젊은이들을 파병하는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다른이를 죽일것입니다. 그리고 일부는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전쟁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그리고 전쟁을 평화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난해한 질문들을 수반하는-무력충돌에 의한 희생에 대한 격한 슬픔을 안고 제가 여기에 서있는 것입니다.
 
These questions are not new. War, in one form or another, appeared with the first man. At the dawn of history, its morality was not questioned; it was simply a fact, like drought or disease ? the manner in which tribes and then civilizations sought power and settled their differences.
그러한 질문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또는 다른 형태로, 인류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초창기 인류역사에서, 전쟁에 대한 도덕성은 의문시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가뭄이나 질병같은 하나의 사실일뿐이었습니다. 부족이나 문명사회간에 권력을 획득하고, 그들간의 차이를 해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Over time, as codes of law sought to control violence within groups, so did philosophers, clerics and statesmen seek to regulate the destructive power of war. The concept of a "just war" emerged, suggesting that war is justified only when it meets certain preconditions: if it is waged as a last resort or in self-defense; if the forced used is proportional; and if, whenever possible, civilians are spared from violence.
세월이 흐르고, 법의 규율을 통해 집단내의 폭력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며, 철학자, 성직자 그리고 정치가들은 전쟁의 파괴적인 힘에 대한 규율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 "정당한 전쟁"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그러한 전쟁은 오직 확실한 조건 즉 최후의 수단으로써 또는 자기방어를 위한; 힘의 사용이 비례적인; 그리고 언제라도 가능하다면 민간인들이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충족해야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제안이 이루어졌습니다.  
 
For most of history, this concept of just war was rarely observed. The capacity of human beings to think up new ways to kill one another proved inexhaustible, as did our capacity to exempt from mercy those who look different or pray to a different God. Wars between armies gave way to wars between nations ? total wars in which the distinction between combatant and civilian became blurred. In the span of 30 years, such carnage would twice engulf this continent. And while it is hard to conceive of a cause more just than the defeat of the Third Reich and the Axis powers, World War II was a conflict in which the total number of civilians who died exceeded the number of soldiers who perished.

물론 대부분의 인류역사에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원칙이 준수된 것을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혁신적인 살상 수단을 고안해내는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생김새가 다른 또는 종교가 다른 자들에 대한 관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통해 이루어진 전쟁은 --전투병과 민간인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지는 전면전인--국가 간의 전쟁으로 변모했습니다. 30년 동안, 두번에 걸친 대학살이 유럽대륙을 전체를 뒤덥었습니다. 독일제국과 추축국을 격멸하는 것보다 더 정의로운 명분은 생각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사망한 민간인의 수는 전투자 사망자를 능가했습니다. 
 


 

In the wake of such destruction, and with the advent of the nuclear age, it became clear to victor and vanquished alike that the world needed institutions to prevent another World War. And so, a quarter century after the United States Senate rejected the League of Nations ? an idea for which Woodrow Wilson received this Prize ? America led the world in constructing an architecture to keep the peace: a Marshall Plan and a United Nations, mechanisms to govern the waging of war, treaties to protect human rights, prevent genocide and restrict the most dangerous weapons.

그러한 파괴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 그리고 핵무기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승전국과 패전국은 세계대전을 방지하는 국제 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상원의회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한 아이디어인- 국제연맹의 가입을 거부한지 사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미국은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체제 -- 마샬플랜과 국제연합, 전쟁비용을 조정하는 체제, 인권을 보호하고 인종학살을 금지하고 위협적인 무기들을 제한하는 국제조약 등--를 구축하는 작업을 이끌었습니다;
 


 

In many ways, these efforts succeeded. Yes, terrible wars have been fought, and atrocities committed. But there has been no Third World War. The Cold War ended with jubilant crowds dismantling a wall. Commerce has stitched much of the world together. Billions have been lifted from poverty. The ideals of liberty, self-determination, equality and the rule of law have haltingly advanced. We are the heirs of the fortitude and foresight of generations past, and it is a legacy for which my own country is rightfully proud.
 

여러 면에서 이러한 노력들이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렇습니다. 끔찍한 전쟁들이 일어났고, 극악무도한 사태들이 자행되어졌습니다. 그러나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환희에 찬 군중이 장벽을 허물면서 냉전은 종식되었습니다. 상업거래는 세계 대부분 지역를 하나로 묶었습니다. 수십억 명이 빈곤에서 탈출했습니다. 자유, 민족자결, 평등, 법치의 이념들이 더디게나마 진전을 이룩했습니다. 우리들은 앞선 새대의 끈기와 예지를 물려받았으며, 이것은 저의 조국이 마땅히 자랑스러워 할만한 중요한 유산입니다.  
 


 

A decade into a new century, this old architecture is buckling under the weight of new threats. The world may no longer shudder at the prospect of war between two nuclear superpowers, but proliferation may increase the risk of catastrophe. Terrorism has long been a tactic, but modern technology allows a few small men with outsized rage to murder innocents on a horrific scale.
21세기의 10년동안, 이 과거의 체제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여 삐걱대고 있습니다. 세계는 더이상 핵을 가진 두 초강대국들 사이의 전쟁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됐지만, 재앙의 위험의 빠르게 증대되고 있습니다. 테러는 오랜 전술의 하나였지만, 첨단 기술을 악용하는 분노로 가득찬 소수의 집단은 엄청난 규모의 무고한 시민학살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Moreover, wars between nations have increasingly given way to wars within nations. The resurgence of ethnic or sectarian conflicts, the growth of secessionist movements, insurgencies and failed states have increasingly trapped civilians in unending chaos. In todays wars, many more civilians are killed than soldiers; the seeds of future conflict are sown, economies are wrecked, civil societies torn asunder, refugees amassed and children scarred.
더 나아가, 국가간의 전쟁이 이제는 국가내의 전쟁으로 그 양상이 변모하고 있습니다. 인종 또는 종교분파적 분쟁의 재발, 분리독립세력의 확대, 내전, 그리고 실패국가들이 자국민들을 끝없는 혼동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시민들이 전투병보다 더 많이 사망하고; 미래 분쟁의 씨앗들이 자라고, 경제는 피폐해지며, 시민사회는 산산히 와해되고, 난민이 폭증하고 아이들이 깊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I do not bring with me today a definitive solution to the problems of war. What I do know is that meeting these challenges will require the same vision, hard work and persistence of those men and women who acted so boldly decades ago. And it will require us to think in new ways about the notions of just war and the imperatives of a just peace.
저는 이 자리에서 전쟁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그러한 도전들을 직면하는 데에는, 이미 수십년 전에 용기있는 행동을 실천에 옮긴 앞선 세대와 동일한 통찰력과 고된 노력 그리고 인내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의로운 전쟁의 개념과 정의로운 평화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We must begin by acknowledging the hard truth that we will not eradicate violent conflict in our lifetimes. There will be times when nations ? acting individually or in concert ? will find the use of force not only necessary but morally justified.
우리는 우리의 생애안에 폭력적 분쟁을 완전히 뿌리뽑지 못할 것이라는 엄연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단독 또는 집단으로 행동하던지간에--앞으로 국가들이 무력의 사용을 필요에 의해서만이 아닌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수행하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I make this statement mindful of what Martin Luther King said in this same ceremony years ago: "Violence never brings permanent peace. It solves no social problem: It merely creates new and more complicated ones." As someone who stands here as a direct consequence of Dr. Kings lifes work, I am living testimony to the moral force of non-violence. I know there is nothing weak, nothing passive, nothing naive in the creed and lives of Gandhi and King.

저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과거 바로 이 자리에서 했던 연설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폭력은 결코 영속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폭력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폭력은 단지 새로운 그리고 좀더 복잡한 폭력를 야기할 뿐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평생을 바친 헌신의 직접적인 결과로 이 자리에 서게 된 사람으로써, 저는 비폭력 운동의 도덕적 저력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저는 간디나 킹의 믿음과 삶이 추호도 미약하거나, 수동적이거나, 순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But as a head of state sworn to protect and defend my nation, I cannot be guided by their examples alone. I face the world as it is, and cannot stand idle in the face of threats to the American people. For make no mistake: Evil does exist in the world. A nonviolent movement could not have halted Hitlers armies. Negotiations cannot convince al-Qaidas leaders to lay down their arms. To say that force is sometimes necessary is not a call to cynicism ? it is a recognition of history, the imperfections of man and the limits of reason.
그러나 국가의 수반으로써 조국을 수호하고 지키겠다는 맹새를 하였기 때문에, 저는 오직 그들의 선례만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세계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미국 국민들을 겨냥한 위협에 맞서는데 나태할 수 없습니다. 세계에 사악한 무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비폭력 운동이 히틀러의 군대를 막을 수 없습니다. 협상이 알카에다 지도자들이 그들의 무기를 버리도록 설득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이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이성의 한계에 대한 역사의 인식입니다.
 
I raise this point because in many countries there is a deep ambivalence about military action today, no matter the cause. At times, this is joined by a reflexive suspicion of America, the worlds sole military superpower.
제가 이점을 지적하는 것은 이유 여할를 불문하고 군사적 행동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표시하는 국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몇몇 경우에 있어서는, 이러한 불신에는 세계 최강군사대국인 미국에 대한 반사적인 반감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Yet the world must remember that it was not simply international institutions ? not just treaties and declarations ? that brought stability to a post-World War II world. Whatever mistakes we have made, the plain fact is thi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as helped underwrite global security for more than six decades with the blood of our citizens and the strength of our arms. The service and sacrifice of our men and women in uniform has promoted peace and prosperity from Germany to Korea, and enabled democracy to take hold in places like the Balkans. We have borne this burden not because we seek to impose our will. We have done so out of enlightened self-interest ? because we seek a better future for 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and we believe that their lives will be better if other people's children and grandchildren can live in freedom and prosperity.
그러나 단지 국제 기구들--국제조약이나 선언들 --덕분에 세계2차대전 이후에 세계의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어떤 실수를 저질렸던지 간에, 한 가지 사실만은 명백합니다: 즉 미국이 자국민들의 희생과 군사력을 통해 60년 이상 세계 안보를 강화하는데 기여해왔다는 점입니다. 미군 장병의 봉사와 희생을 통해 독일에서 한국에 이르는 평화와 번영을 증진해왔으며, 발칸반도 등의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청착할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의지를 관철시킬 목적으로 이러한 책무를 자임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계몽된 자국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그 같은 행동을 실천에 옮겼습니다―왜냐하면 미국은 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염원하기 때문이며, 다른 국가의 아이들이 자유와 번영을 구가할 때 우리 아이들의 삶도 개선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So yes, the instruments of war do have a role to play in preserving the peace. And yet this truth must coexist with another ? that no matter how justified, war promises human tragedy. The soldiers courage and sacrifice is full of glory, expressing devotion to country, to cause and to comrades in arms. But war itself is never glorious, and we must never trumpet it as such.
그렇습니다. 전쟁이라는 수단은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러한 진리는 아무리 정당한 정쟁이라 할지라도, 전쟁은 인류의 비극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는 또다른 진리와 공존해야 합니다. 국인의 용기와 희생은 가장 명예로운 것이며, 조국과 이념과 전우에 대한 헌신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전쟁 그자체는 결코 명예롭지 못하며, 우리는 결코 전쟁을 그런식으로 떠벌리지 않아야 합니다.
 
So part of our challenge is reconciling these two seemingly irreconcilable truths ? that war is sometimes necessary, and war is at some level an expression of human feelings. Concretely, we must direct our effort to the task that President Kennedy called for long ago. "Let us focus," he said, "on a more practical, more attainable peace, based not on a sudden revolution in human nature but on a gradual evolution in human institutions."
그러므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겉보기에 결코 융화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진리를―때때로 전쟁이 필요하다는 진리와 전쟁은 어느 선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표출된 결과라는 진리를―조화시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오래전에 케네디 대통령이 촉구한 바 있는--우리의 과업에 대한 노력들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초점을 맞추자", 그는 말했습니다. "좀 더 실천적이고, 좀 더 현실적인 평화는, 인간의 본성의 갑작스런 변혁이 아니라 제도의 점진적인 변화에 기초한다."
 
What might this evolution look like? What might these practical steps be?
그러한 점진적인 변화는 어떤 형태를 띠게 될까요? 이러한 실천적인 절차들은 무엇일까요?
 
To begin with, I believe that all nations ? strong and weak alike ? must adhere to standards that govern the use of force. I ? like any head of state ? reserve the right to act unilaterally if necessary to defend my nation. Nevertheless, I am convinced that adhering to standards strengthens those who do, and isolates ? and weakens ? those who dont.
우선, 강대국이던 약소국이던 간에--모든 국가들이 무력의 사용을 감독하는 규약을 준수해야 합니다. 몇몇 국가의 지도자들처럼--저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방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국제규약을 준수하는 국가들은 강대해지고, 그것을 위반하는 국가들은 고립되고 약화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The world rallied around America after the 9/11 attacks, and continues to support our efforts in Afghanistan, because of the horror of those senseless attacks and the recognized principle of self-defense. Likewise, the world recognized the need to confront Saddam Hussein when he invaded Kuwait ? a consensus that sent a clear message to all about the cost of aggression.
전세계는 9.11공격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결집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우리의 노력에 대해 계속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한 공포와 자위에 대한 원칙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때 세계는 이에 맞설 당위성에 대해 인식했으며-- 침략의 대가를 치룰 것이라는 분명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일치된 의견을 이뤘습니다..
  
Furthermore, America cannot insist that others follow the rules of the road if we refuse to follow them ourselves. For when we dont, our action can appear arbitrary, and undercut the legitimacy of future intervention ? no matter how justified.

더 나아가, 미국이 우리 스스로 규칙들을 위반했다면, 우리는 다른 국가들에게 규칙을 따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규칙을 어기면, 우리의 행동은 자의적인 것으로 비춰질 것이며, 또한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도-- 우리가 행하는 장래에 개입에 대한 정당성이 훼손되었을 것입니다. 
 


 

This becomes particularly important when the purpose of military action extends beyond self-defense or the defense of one nation against an aggressor. More and more, we all confront difficult questions about how to prevent the slaughter of civilians by their own government, or to stop a civil war whose violence and suffering can engulf an entire region.
군사 활동의 목적이 자기방어 또는 침략자에 대항하는 방어의 범위를 넘어서 이루어질 때 그러한 원칙은 더욱 중요해 질 것입니다. 점점, 다른 정부가 자행하는 시민에 대한 학살에 대한 예방과, 또는 폭력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내전이 확대되는 것을 저지해야 하는 것에 관한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는 경는 경우가 등가하고 있습니다.. 

I believe that force can be justified on humanitarian grounds, as it was in the Balkans, or in other places that have been scarred by war. Inaction tears at our conscience and can lead to more costly intervention later. That is why all responsible nations must embrace the role that militaries with a clear mandate can play to keep the peace.
발칸반도에서처럼, 또는 전쟁에 흉터가 남은 다른 지역들에서처럼, 저는 인도주의적 기반에 기초한 무력의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양심에 상처입히는 무행동이 나중에는 더 큰 대가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책임있는 국가들이 분명한 군사행동을 통한 평화를 지켜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Americas commitment to global security will never waver. But in a world in which threats are more diffuse, and missions more complex, America cannot act alone. This is true in Afghanistan. This is true in failed states like Somalia, where terrorism and piracy is joined by famine and human suffering. And sadly, it will continue to be true in unstable regions for years to come.
미국의 세계안보에 대한 의지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협이 더욱 확산되고, 임무는 복잡해진 세계에서, 미국은 혼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아프가니스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은  테러리즘과 해적활동이 기근과 인권유린이 더해진 소말리아와 같은 실패한 국가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내정이 불안정한 지역에서는 그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입니다.
 
 
The leaders and soldiers of NATO countries ? and other friends and allies ? demonstrate this truth through the capacity and courage they have shown in Afghanistan. But in many countries, there is a disconnect between the efforts of those who serve and the ambivalence of the broader public. I understand why war is not popular. But I also know this: The belief that peace is desirable is rarely enough to achieve it. Peace requires responsibility. Peace entails sacrifice. That is why NATO continues to be indispensable. That is why we must strengthen U.N. and regional peacekeeping, and not leave the task to a few countries. That is why we honor those who return home from peacekeeping and training abroad to Oslo and Rome; to Ottawa and Sydney; to Dhaka and Kigali ? we honor them not as makers of war, but as wagers of peace.
나토 연합국--그리고 다른 우방과 동맹국들--의 지도자들과 군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의 역량과 용기를 통해 이러한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병들의 희생과 일반 국민들의 불신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저는 전쟁이 외면 받는 이유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만으로는 결코 평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는 책임이 요구됩니다. 평화는 희생을 수반합니다. 그것이 나토 연합군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국제연합과 지역적 평화유지활동을 강화시키고, 몇몇 국가에만 책임을 떠맞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오슬로와 로마; 오타와와 시드니; 다카(방글라데시 수도)에서, 킬가리(르완다 수도)에서 평화유지활동과 훈련을 하고 고향으로 귀환하는 장병들의 공로를 기리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전쟁의 수행자가 아니라, 평화의 수호자로써 존경하는 것입니다. 
 
Let me make one final point about the use of force. Even as we make difficult decisions about going to war, we must also think clearly about how we fight it. The Nobel Committee recognized this truth in awarding its first prize for peace to Henry Dunant ? the founder of the Red Cross, and a driving force behind the Geneva Conventions.
무력의 사용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참전 여부를 놓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전쟁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반드시 분명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노벨위원회는 앙리 뒤낭--적십자사의 창시자이며 열성적으로 제네바협약을 이끌어낸 인물--을 첫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면서 이러한 진리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Where force is necessary, we have a moral and strategic interest in binding ourselves to certain rules of conduct. And even as we confront a vicious adversary that abides by no rules, I believe that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must remain a standard bearer in the conduct of war. That is what makes us different from those whom we fight. That is a source of our strength. That is why I prohibited torture. That is why I ordered the prison at Guantanamo Bay closed. And that is why I have reaffirmed Americas commitment to abide by the Geneva Conventions. We lose ourselves when we compromise the very ideals that we fight to defend. And we honor those ideals by upholding them not just when it is easy, but when it is hard.
무력사용이 필요한 경우, 우리는 일련의 행동 수칙을 정해 스스로를 구속시킴으로써 도덕적 그리고 전략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악한 적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미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상대하는 적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힘의 원천입니다. 그것이 제가 고문을 금지한 이유입니다.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지시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제가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는 미국의 의무를 재천명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웅호해야한 이념과 가치들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패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편한한 조건이 아니라 어려울 조건에도 변함없이 우리의 이상을 떠받듦으로써 그러한 이상을 기립니다.
 
 
I have spoken to the questions that must weigh on our minds and our hearts as we choose to wage war. But let me turn now to our effort to avoid such tragic choices, and speak of three ways that we can build a just and lasting peace.
우리가 전쟁을 택할 때 머리와 가슴으로 고민해야 하는 질문에 대해 여러분께 자세히 설명드렸습니다. 이제 그러한 비극적 선택을 피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으로 주제를 바꿔,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First, in dealing with those nations that break rules and laws, I believe that we must develop alternatives to violence that are tough enough to change behavior ? for if we want a lasting peace, then the words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must mean something. Those regimes that break the rules must be held accountable. Sanctions must exact a real price. Intransigence must be met with increased pressure ? and such pressure exists only when the world stands together as one.
첫째, 법과 규칙을 깨뜨리는 국가들과의 협상에 있어서, 우리는 실제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대체적 수단을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의 지속을 원한다면, 국제사회의 결정이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규약을 위반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제재조치는 실재적인 대가를 수반해야 합니다. 비타협적인 국가에 대해서는 압력을 높여야 하며―그러한 압력은 전세계가 단합된 태도를 견지할 때에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One urgent example is the effort to prevent the spread of nuclear weapons, and to seek a world without them. In the middle of the last century, nations agreed to be bound by a treaty whose bargain is clear: All will have access to peaceful nuclear power; those without nuclear weapons will forsake them; and those with nuclear weapons will work toward disarmament. I am committed to upholding this treaty. It is a centerpiece of my foreign policy. And I am working with President Medvedev to reduce America and Russias nuclear stockpiles.
시급한 사례 중 하나로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모색하는 노력을 들 수 있습니다. 지난 세기 중반에 세계 각국은 모든 나라가 원자력을 평화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핵무기 비보유국은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무기 보유국은 감축을 추진한다는 분명한 내용을 담은 조약에 합의했습니다. 저는 이 조약을 철저하게 이행할 것입니다. 이는 제 외교 정책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공동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를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But it is also incumbent upon all of us to insist that nations like Iran and North Korea do not game the system. Those who claim to respect international law cannot avert their eyes when those laws are flouted. Those who care for their own security cannot ignore the danger of an arms race in the Middle East or East Asia. Those who seek peace cannot stand idly by as nations arm themselves for nuclear war.
그리고 이란과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체제에 대한 위협을 하지 못하도록 주장하는 것은 우리모두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국제법을 존중하라고 주장하는 국가라면 국제법을 무시하는 국가들에 대한 감시를 멈출 수 없습니다. 자국의 안보를 염려하는 국가라면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의 위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라면 핵무기로 무장하는 국가들을 방관할 수 없습니다. 
 
The same principle applies to those who violate international law by brutalizing their own people. When there is genocide in Darfur, systematic rape in Congo or repression in Burma ? there must be consequences. And the closer we stand together, the less likely we will be faced with the choice between armed intervention and complicity in oppression.
이와 같은 법칙은 자국 시민들의 인권을 짖밟는 국제법을 무시하는 국가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다르푸르에서 인종 말살이, 콩고에서 조직적인 강간이, 버마에서 압제가 자행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가 따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입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외교적 노력이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실패할 경우 반드시 결과가 따를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 굳건하게 단합할수록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인지 혹은 압제를 묵인할 것인지 양자간에 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This brings me to a second point ? the nature of the peace that we seek. For peace is not merely the absence of visible conflict. Only a just peace based upon the inherent rights and dignity of every individual can truly be lasting.
두 번째 항목인 평화의 본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평화가 단지 가시적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옳바른 평화는 기본권과 개인의 존엄성에 기초할 때만이 진정으로 지속될 수 있습니다.
 
It was this insight that drove drafters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fter the Second World War. In the wake of devastation, they recognized that if human rights are not protected, peace is a hollow promise.
이것은 세계2차대전이후 마련된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자들이 지닌 통찰력입니다. 폐허가 남기고간 자리에서, 그들은 인간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으면 평화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And yet all too often, these words are ignored. In some countries, the failure to uphold human rights is excused by the false suggestion that these are Western principles, foreign to local cultures or stages of a nations development. And within America, there has long been a tension between those who describe themselves as realists or idealists ? a tension that suggests a stark choice between the narrow pursuit of interests or an endless campaign to impose our values.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 그들의 선언은 무시되었습니다. 일부 국가들에서는, 서방세력의 원리일 뿐이라고, 자신의 지역문화와 국가발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짓 암시를 통해 자국 내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내에서는, 자신을 현실주의자나 자유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 간에 오랜 갈등이 있엇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편협한 이익의 추구와 전세계에 미국의 가치를 전파하려는 끊임없는 캠페인 사이에서 극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I reject this choice. I believe that peace is unstable where citizens are denied the right to speak freely or worship as they please, choose their own leaders or assemble without fear. Pent up grievances fester, and the suppression of tribal and religious identity can lead to violence. We also know that the opposite is true. Only when Europe became free did it finally find peace. America has never fought a war against a democracy, and our closest friends are governments that protect the rights of their citizens. No matter how callously defined, neither Americas interests ? nor the worlds ? are served by the denial of human aspirations.
저는 그러한 선택을 거부합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억압받지 않는 상태에서 국민들이 자신의 지도자와 의회를 선택하는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평화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정치적 요구의 표출이 억압되며, 종족 또는 종교적 정채성을 억압하면, 그것은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럽대륙은 그러한 억압에서 해방되었을때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결코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긴밀한 우방세력은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부들입니다. 아무리 무감각하게 정의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미국 혹은 세계의 이익을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So even as we respect the unique culture and traditions of different countries, America will always be a voice for those aspirations that are universal. We will bear witness to the quiet dignity of reformers like Aung Sang Suu Kyi; to the bravery of Zimbabweans who cast their ballots in the face of beatings; to the hundreds of thousands who have marched silently through the streets of Iran. It is telling that the leaders of these governments fear the aspirations of their own people more than the power of any other nation. And it is the responsibility of all free people and free nations to make clear to these movements that hope and history are on their side.
서로 다른 나라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미국은 언제나 세계보편적인 소망을 표출하는 목소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웅산 수지여사과 같은 평온한 존엄성을 가진 개혁가; 폭력에 직면하면서도 소신있게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한 짐바브웨이의 영웅들; 거리에서 침묵의 행군을 한 수만명의 이란시민들;에 대해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정부의 지도자들은 다른 어느 나라의 무력보다도 자국 시민들의 열망에 대해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과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시민들의 행동을 분명하게 지지하는 것은 모든 자유로운 시민과 자유로운 국가의 책임입니다.

Let me also say this: The promotion of human rights cannot be about exhortation alone. At times, it must be coupled with painstaking diplomacy. I know that engagement with repressive regimes lacks the satisfying purity of indignation. But I also know that sanctions without outreach ? and condemnation without discussion ? can carry forward a crippling status quo. No repressive regime can move down a new path unless it has the choice of an open door.
그리고 이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인권의 신장은 훈계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각고의 외교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압제정권을 포용한다는 것이 순수한 분노를 만족스럽게 나타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은 저도 주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용 없는 제재조치?즉, 논의의 과정이 결여된 비난?는 좌절스러운 현상유지만을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어떠한 압제정권도 탈출구를 택할 수 없다면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In light of the Cultural Revolutions horrors, Nixons meeting with Mao appeared inexcusable ? and yet it surely helped set China on a path where millions of its citizens have been lifted from poverty, and connected to open societies. Pope John Pauls engagement with Poland created space not just for the Catholic Church, but for labor leaders like Lech Walesa. Ronald Reagans efforts on arms control and embrace of perestroika not only improved relations with the Soviet Union, but empowered dissidents throughout Eastern Europe. There is no simple formula here. But we must try as best we can to balance isolation and engagement, pressure and incentives, so that human rights and dignity are advanced over time.
문화혁명의 공포에 비추어보면, 닉슨의 마오쩌둥 방문은 정당화될 수 없어 보였습니만, 그러한 만남은 중국이 수억명의 시민들을 빈곤에서 벋어나도록 하고, 국제사회와 연결되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데 기여했습니다. 폴란드와 이루어진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섭은 카톨릭 교회에 대한 공간 뿐만아니라, Lech Walesa과 같은 노동지도자의 활동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레이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군비통제와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포용에 관한 노력은 소련과의 관계를 증진했을 뿐만아니라, 동유럽 도처의 반체제인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단순한 해법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시키는 것과 교섭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압력과 지원에 대한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류의 기본권과 존업성을 증진시키는 길입니다. 
 
Third, a just peace includes not only civil and political rights ? it must encompass economic security and opportunity. For true peace is not just freedom from fear, but freedom from want.
셋째, 정당한 평화는 시민권 및 정치적 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안정과 기회까지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공포로 부터의 자유뿐만아니라, 빈곤에 대한 자유도 포함됩니다.  
 
It is undoubtedly true that development rarely takes root without security; it is also true that security does not exist where human beings do not have access to enough food, or clean water, or the medicine they need to survive. It does not exist where children cannot aspire to a decent education or a job that supports a family. The absence of hope can rot a society from within.
안정이 없이는 경제발전이 뿌리내릴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시민들을 위한 충분한 식량, 깨끗한 물, 생존에 필요한 의료서비스없이 안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어린이들에 대한 양질의 교육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이 안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그 내부로부터 부패할 수 있습니다.
 
And that is why helping farmers feed their own people ? or nations educate their children and care for the sick ? is not mere charity. It is also why the world must come together to confront climate change. There is little scientific dispute that if we do nothing, we will face more drought, famine and mass displacement that will fuel more conflict for decades. For this reason, it is not merely scientists and activists who call for swift and forceful action ? it is military leaders in my country and others who understand that our common security hangs in the balance.
때문에 자국의 시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농부를 지원하고, 국가가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병을 돌보는 것은 단순한 자선활동이 아닙니다. 전세계가 합심하여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수방관한다면 더욱 심각한 가뭄, 기아, 집단실향민 발생 등 수십 년에 걸쳐 더 많은 분쟁을 야기할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임은 과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이 신속하고 강력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여타 국가의 군 지도층은 인류의 공동안보가 위기에 처해있음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Agreements among nations. Strong institutions. Support for human rights. Investments in development. All of these are vital ingredients in bringing about the evolution that President Kennedy spoke about. And yet, I do not believe that we will have the will, or the staying power, to complete this work without something more ? and that is the continued expansion of our moral imagination, an insistence that there is something irreducible that we all share.
국가간 합의, 제도 강화, 인권 옹호, 개발 투자, 이 모든 것들이 케네디 대통령이 주창한 사회진화를 일으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면 우리가 이 같은 과업을 완수할 의지, 결단력, 지속적인 힘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도덕적 상상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 즉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어떤 환원 불가능한 가치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As the world grows smaller, you might think it would be easier for human beings to recognize how similar we are, to understand that we all basically want the same things, that we all hope for the chance to live out our lives with some measure of happiness and fulfillment for ourselves and our families.
세계가 점점 더 가까워짐에 따라 우리가 서로간의 공통점을 인식하고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 즉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족을 위해 어느 정도 수준의 행복과 성취를 달성하여 우리의 삶을 구현할 기회를 원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And yet, given the dizzying pace of globalization, and the cultural leveling of modernity, it should come as no surprise that people fear the loss of what they cherish about their particular identities ? their race, their tribe and, perhaps most powerfully, their religion. In some places, this fear has led to conflict. At times, it even feels like we are moving backwards. We see it in the Middle East, as the conflict between Arabs and Jews seems to harden. We see it in nations that are torn asunder by tribal lines.
그러나 웬일인지 어지러운 속도로 진행되는 세계화와 현대의 문화평준화를 고려할 때, 사람들이 자신의 인종, 민족, 그리고 아마 가장 강력한 요소일지 모를 종교 등 자신의 특정한 정체성에 있어 소중히 간직한 것을 상실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공포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랍과 유대인간의 갈등이 굳어져가고 있는 것만 같은 중동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보입니다. 민족이라는 경계선에 의해 뿔뿔이 갈라선 국가들에서도 이런 현상이 보입니다.
 
Most dangerously, we see it in the way that religion is used to justify the murder of innocents by those who have distorted and defiled the great religion of Islam, and who attacked my country from Afghanistan. These extremists are not the first to kill in the name of God; the cruelties of the Crusades are amply recorded. But they remind us that no Holy War can ever be a just war. For if you truly believe that you are carrying out divine will, then there is no need for restraint ? no need to spare the pregnant mother, or the medic, or even a person of ones own faith. Such a warped view of religion is not just incompatible with the concept of peace, but the purpose of faith ? for the one rule that lies at the heart of every major religion is that we do unto others as we would have them do unto us.
그리고 가장 위험스럽게도, 이슬람교라는 위대한 종교를 왜곡시키고 모독하며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미국을 공격한 이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살인 행각을 정당화하는 데 이슬람교가 악용되는 방식에서도 그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주의자들 이전에도 신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른 예는 있었습니다. 십자군의 잔혹 행위에 대한 기록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어떠한 성전(聖戰)도 결코 정당한 전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본인이 신의 뜻을 실천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으면 절제할 필요가 없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임신부, 의료진, 적십자 직원, 심지어 자신과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까지도 살려둘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뒤틀린 종교관은 평화라는 개념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앙의 목적 그 자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거대 종교의 한 가지 핵심원칙은 바로 남들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바와 같이 우리도 남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Adhering to this law of love has always been the core struggle of human nature. We are fallible. We make mistakes, and fall victim to the temptations of pride, and power, and sometimes evil. Even those of us with the best intentions will at times fail to right the wrongs before us.
이러한 사랑의 법칙을 준수하는 일은 언제나 인간 본성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갈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오만과 권력 그리고 때로는 악의 유혹에 굴복하기도 합니다.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도 때로는 우리 앞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But we do not have to think that human nature is perfect for us to still believe that the human condition can be perfected. We do not have to live in an idealized world to 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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