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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에 핀 목련
1997년 12월 초, 서울의 겨울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 IMF 사태라는 초유의 한겨울 태풍이 서울 증시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그해 10월부터 시작된 주가 대폭락 사태에서 불과 2개월 사이에 주식투자로 3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날린 J씨는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그는 전혀 추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돈은 3,000여만 원. 죽느냐 사느냐, 칼날 위에 선 비장한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운명의 12월 3일. IMF 구제금융이 공식발표되는 날이었다.
연일 폭락하던 주가가 356포인트에서 저점을 찍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이제 손실 만회는 옵션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J씨는 주가가 일시적으로 큰 반등을 할 것으로 직감하고, 담배가격에 불과하던 외가격 콜옵션 2개 종목 매수에 3,000만 원을 몰빵하였다.
주문표를 적는 그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그날의 주식시세는 후장 들어 저가 대비 20포인트 넘게 오른 379포인트에 마감되었고, 주가는 다음날, 그 다음날도 폭등하여 12월 5일에는 430포인트를 넘고 있었다. 3일간 20% 이상이나 오른 셈이었다.
J씨가 매수한 2종목의 콜옵션 시세도 폭등하여 수익은 투자금액의 50배가 넘는 15억 원을 상회하고 있었다. 한겨울의 추위를 잠시 잊은 목련이 계절을 잊고 꽃을 활짝 피운 것이었다. J씨의 눈가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불행 끝, 행복 시작’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100배까지 가달라고 기원하는 그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매수한 지 정확히 4일째 되는 날, 운명의 여신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만다. 그가 매수한 콜옵션 시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더 이상 폭등이 없으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콜옵션의 매물이 폭주한 것이다.
J씨는 전매하려고 했으나 어제의 피크치가 눈에 어른거려 도저히 팔 수가 없었다. 머뭇머뭇 망설이는 사이에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폭등하던 옵션시세가 휴짓조각으로 돌변했다. 3일 천하였다.
마술과 같은 옵션의 시세변동 때문에 하루 아침에 천당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J씨의 모습을 그 이후에 객장에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가지 더!
투자의 유연성
선물·옵션투자의 정답은 있는가?
정도(正道)는 있어도 정답은 없다. 임기응변적이고 시의적절한 대처가 정답이라면 정답이라 하겠다.
포지션을 보유한 투자자는 시세가 거꾸로 갈 경우 시장의 흐름을 부정하면서 쓸데없는 아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절대’라는 확신에 찬 투자자는 마진콜을 당할 위험에 처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얼마 동안 포지션을 갖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투자자의 융통성과 유연성에 달려 있다. 어떤 경우에는 매수한 지 1분 만에 전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추세가 확실할 때는 결제일까지 가져갈 수 있는 인내력도 필요하다. 시장 자체는 너무나 급변하기 때문에 유연성이라는 무기로 무장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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