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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열차를 탄 거사(居士)
1998년 연말은 IMF 사태 이후 모처럼 찾아온, 증권주가 주도하는 대폭등 장세였다. 그러나 개인사업을 하는 N씨는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해 연말의 상승이 미세한 반등으로 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투자를 유보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간된 1억 원으로 3개월 만에 17억 원을 벌었느니 하는 책을 보면서 오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N씨의 판단은 이러했다. 모든 경제지표나 대내외적 변수를 검토해봐도 이 암울한 상황에서 주가가 상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때를 기다렸다. 1998년 여름처럼 280포인트는 아니더라도 깊은 반락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드디어 때가 왔다. 1999년 1월이었다.
600포인트를 넘던 주가가 600선을 저항선으로 하여 되밀리기 시작했다. N씨는 지난 연말에 못 다한 투자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 선물 매도 포지션에 승부를 걸었다. 사업자금으로 유보해놓은 퇴직금 중 1억 원을 갖다부었다. 선물 20계약을 거래할 수 있는 돈이었다.
예상대로 주가가 500선까지 밀리자 약간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500선을 일시 하향 돌파하던 주가는 500선에서 잠시 머무르더니 3월이 되자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그는 은행 대출금 등을 포함한 1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여 매도 포지션에 얹어놓았다. 2억 원을 선물 매도에 투자한 것이다.
그러나 3월 들어 주가는 오르는 듯 내리는 듯하면서 비틀비틀 오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600선을 상향 돌파하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N씨가 손실을 감수하고 포지션을 정리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의 계좌는 벌써 반 토막이 넘게 나 있었다.
다시 오기가 발동한 N씨는 전고점인 650선에 접근한 4월 초순, 작년 연초처럼 쌍봉을 만들면서 다시 반락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다시 매도 포지션에 베팅을 하였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주가는 전고점에서 잠시 머물더니 강하게 상향 돌파하면서 5월이 되자 800포인트까지 폭등하고 말았다.
당황한 N씨는 청산·매도, 청산·매도를 반복해봤으나 이미 불이 붙은 증시는 소방수가 와도 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N씨가 눈물을 머금고 포지션을 청산하고 보니 투자금 2억 원이 3,000만 원으로 줄어 있었다. 그제야 그는 여태까지 남행열차를 타고 있었음을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뒤늦게 코스닥 시장에 불이 붙은 것을 깨달은 그는 코스닥 종목에 투자를 하였으나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낙방거사가 성공할 리 만무했다.
한 가지 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붐이 지나간 자리에는 후유증만 남고, 후유증이 있는 자리에는 투자자들의 절망적인 한숨 소리만 남게 된다. 마(魔)의 1,000포인트대를 뚫었으면서도 이를 고수하지 못하여 종합주가지수가 반 토막 이상이 난 것은 2000년이 세 번째가 되지만 그 후유증은 어느 때보다 심한 것 같다.
그 이유는 첫째, 1998년부터 1999년 연말까지 15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주가가 지나치게 상승했다는 점이다. 이 기간에 거래소는 3.5배, 코스닥은 무려 4.6배나 상승하였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게 마련이다.
둘째는 상하한폭이 과거에 비해 두 배 이상 확대된 점이다. 신용·미수를 쓰면 몇 번의 하한가에 깡통이 되고 만다.
셋째는 사이버 거래 활성화로 초단타매매가 극성을 부렸기 때문이다. 초단타매매는 잘 쓰면 보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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