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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의 딜레마와 주식매수청구권
두 사람의 공범이 각각 다른 방에서 조사를 받는다. 한 사람이 다른 공범의 죄를 폭로하면 공범은 중형을 받고 대가로 폭로자는 풀려난다. 둘 다 입을 다물면 가벼운 형을 살고 나올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죄를 폭로하면 둘 다 중형에 처해진다.
합리적인 선택은 둘 다 입을 다무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에게 최선의 상황만을 노린 끝에 상대의 죄를 폭로하여 결국 모두가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다. 이른바 ‘수인(囚人)의 딜레마’이다.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된 주식매수청구권
게임의 룰이 적용되는 증시에서도 유사한 딜레마가 발견된다. 주식매수청구권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기업이 합병이나 영업 양수겲永 등 주주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을 내린 경우에 이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자기의 주식을 사달라고 회사측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합병이나 영업양도 등으로 경영이 호전되어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판단되면 주식매수청구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기업이 무리없이 사줄 수 있는 정도로만 주식매수청구가 이루어지면 매수청구자는 원하는 가격으로 주식을 처분할 수 있고, 기업은 하고자 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기업의 경영상태가 좋아지면 매수청구를 하지 않은 주주도 주가가 올라 이익을 보는 최선의 결과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증시침체로 주가가 하락세에 있을 때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주식매수청구가격은 기본적으로는 주주와 회사측이 합의해서 결정할 문제이지만 보통 합병이나 영업양도 등을 결의한 이사회일 전 60일 동안의 평균주가가 적용된다. 주가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면 매수청구가격이 시가보다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주주들이 너나할것없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 전날까지 이사회 결의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해야 하는데 반대의사가 많으면 주총에서 이사회 결의 자체가 통과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안건은 겨우 통과될 수 있다 하더라도 매수청구금액 규모가 너무 커지면 회사측에서 계획을 포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자 했던 주주는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필수적인 합병이나 영업 양도를 못하게 된다. 결국 주가도 급락하여 주주나 회사가 모두 손해를 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어나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IMF체제로 증시가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했던 1998년 상반기의 경우 특히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났다. 1998년 상반기중 매수청구권 때문에 영업 양수겲永돋 포기하거나 주총에서 부결된 경우는 11건에 달했다.
주식매수 청구절차
이렇게 되자 금융감독위원회는 1998년 기업이 주식매수청구권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사회결의 60일 전 주가로 결정된 청구가격에 대해 회사측 또는 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주주의 30%가 반대하면 금감위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이때 금감위가 60일 평균주가에 주가지수상승률, 매수청구기간 종료일 주가를 감안해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매수청구가격이 이전보다 낮아지게 되어 주주들에게 불리해졌다.
매수청구가격이 낮아지긴 했지만 주가의 변화에 따라 여전히 매수청구권제도는 기업이나 주주측에 상당한 고민을 안겨주는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인의 딜레마’의 예처럼 같이 망하는 한이 있어도 일단 매수청구권 행사를 위해 이사회 결의에 대해 반대입장을 밝히는 게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매수청구권이 구조조정의 암초가 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자 요즘에는 기업들이 매수청구 예상금액을 사전에 계산해보고, 또 매수청구 규모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결의가 부결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
주총에서 이사회 결의가 통과되면 그로부터 20일 이내에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주식의 수를 회사측에 제시해야 하는데 주가가 계속 오른다면 이때 매수청구를 포기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주총 전까지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은 주주에게는 매수청구권 자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단 반대의사를 밝히는 것이 좋다.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회사측은 행사일로부터 2개월 이내에 주식을 실제로 매수해야 한다. 참고로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총회를 위한 주주명부 폐쇄일까지 주주명부에 등재되어 있는 주주에 한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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